지난 30년 동안 많은 유다인 작가들이 예수께서 그들과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 신학자들도 예수께서 유다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여느 유다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으셨다 유다인 학굥 다니시며 시편에 따라 기도하는 법을 배우시고 구약성경에 씌어진 유다의 역사를 공부하셨다. 유다인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도 익히셨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유다 여러 유파의 토론에 참여하셨다. 사고방식을 보면 예수님은 전형적인 유다인이셨다. 하지만 유다교의 여러 종파가 벌이는 토론에 참여하시어 하시는 말씀을 드러 보면 그분의 비범함이 드러난다.
예수님은 나자렛이라는 시골 마을 출신이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에 비할 수 없는 폭넓은 사고력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은 당신의 마음을 믿으셨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율법을 해석하셨다. 그릭 당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신다고 생각하셨다.
신학자 빌헬름 브루너스는 <예수님은 어떻게 신앙을 배우셨을까?>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유다교의 전통을 배우며 자라시고 유다교에서 신앙을 배우셨다고 말했다. 브루너스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당시 이스라엘에 널리 퍼져 있던 묵시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마리아의<마니피캇>에도 이런 묵시론의 영향을 받은 믿음이 담겨 있다. 묵시론은 하느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오시면 온 세상이 변하고 권력이 바뀌고 부자들이 망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배부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곧 오셔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바꾸길 것이라는 믿음을 마리아에게 배우셨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은 주저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곁에서 그저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이 세상을 직접 관여하신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신학자 브루너스는 요셉이 하느님의 계명을 중시하는 바리사이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셉은 율법을 맹목적으로 지키지는 않았다. 요셉은 정의, 즉 의로운 생활을 중요시하면서도 자애와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요셉의 만일 옳고 그름만을 따지고, 율법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자기 모르게 임신한 약혼녀 마리아를 고소해서 사형을 당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율법을 따르지앟고 마리아의 처지를 생각하는 의로운 결정을 내렸다. 요셉이 내린 의로운 결정은 인간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 개개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가끔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율법 규정을 어기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율법을 자비롭게 해석하는 법을 아버지인 요셉에게서 배우셨다.
예수님은 종교 교육을 받으면서 당시 유다교의 여러 종파를 골고루 접하셨다. 유다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예수님이 어느 정도 개방적인 바리사이 출신이셨을 것으로 추측한다. 예수님은 당시 유다교에서 주로 논의되는 내용을 익히 알고 계셨으며 율법을 비판적으로 연구하셨다. 또한 유법을 존중하셨지만 육법이 사람들의 처지에 맞지 안을 경우에는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대범함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율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율법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계셨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우리가 올바르게 살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데 유익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터가 마련된다.
예수님은 시편에 따라 기도를 바치시고 회당의 제사에도 참여하셨다. 그리고 신심 깊은 유다인으로서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셔서 큰 축제에도 참가하셨다. 그곳에서 성전과 성전의 제사에서 느낄 수 있는 열광적인 분위기를 체험하셨다. 이런 영성 분위기에서 자라셨지만 당신 나름의 신앙심을 키워 나가셨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매우 친근한 관계이셨다. 당신의 하느님과 이렇듯 친밀한 관계를 이루시며 그전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압바" -한국어로 '아빠' -라는 다정한 말로 하느님을 부르셨으며 하느님에 대해서도 새롭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하느님에 대해서도 새롭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하느님에 대해 말씀하시고 하느님의 모습을 제시해 주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분의 말씀이 옳다는 생각과 함께 하느님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분 가르침에 무척 놀랐다. 율사들과는 달리 권위를 지닌 분으로서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르 1,22).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율사들과는 다르게 말씀하셨다. 율사들은 올바른 용어로 정확하게 표현하지만 그 표현에는 감흥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칫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처럼 사람들에게 들렸을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저를 만나 주십니다. 이런 하느님을 저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내 가슴의 열망을 채워 주십니다."
예수께서 유다교의 전통을 따르는 랍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분과 여러분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요?
예수께서 시편에 따라 기도하시면서 하느님 체험과 인간 체험을 표현하셨다고 사상해 보세요.
그러면 예수님이 어떻게 느껴집니까?
어떤 마음으로 그분을 만났습니까?
무의식 속에 혹시 유다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요?
여러분의 신아이 유다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셨나요?
구약성경을 꼼꼼히 읽어 보십시오.
예를 들어 구역성경 첫 머리에 나오는 창세기와 탈출기를 깊이 음미하며 읽어 보세요.
창세기와 탈출기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다지 경건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의아하다느 생각이 듭니까?
구약성경에는 영광과 좌절, 신뢰와 절망, 사랑과 증오, 전쟁과 평화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느님의 어두운 면을 볼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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