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의 民族音樂 權威者인 江波戸昭 님의 글 입니다.]
- 우표로 본 세계의 민속악기 (江波戸昭 저/ 김범수 역 , 세광출판사 1990년)
" 어느 날, 젊은 아들이 혼자서 숲으로 갔다.
드럼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러 갔으나,
그 후로 그는 사라져 버렸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이야기꾼 그리오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미국에서 온 중년 신사의 안색은 한없는 흥분의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한 권의 노트를 꺼내서 통역에게 보였다.
그 노트에는 그가 어렸을 무렵, 신시아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그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가 극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노트의 기술과 이야기꾼의 이야기의 내용은 완전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일치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통역에게서 그것을 들은 늙은 이야기꾼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둥글게 그들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도 사태를 깨닫고
감동한 나머지 열광적으로 춤을 추어댔다.
1976년 10월에 발매된 이래 약 반년 만에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의 정상을 차지했던 『뿌리』(Roots)의 결정적 순간의 정경이다.
장소는 서아프리카의 소국 잠비아의 마린케족의 주프레 마을.
필자 알렉스 헤일리의 7대 조상에 해당하는 쿤타 킨테가
이 마을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췄던 것은 1767년의 일이었다.
미국 흑인음악의, 넓게는 미국 음악의 '뿌리'를 아프리카에서
찾는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되어 있는 바이다.
그 전형적인 증거의 하나가 밴조(banjo)를 비롯한 각종 악기의 공통성이다.
아마도 주프레 촌의 이야기꾼이 킨테 일족의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반주용 악기로서는 밴조의 전신이라고 여겨지는 할람(halam)이든지,
앞에서 언급한 코라(『뿌리』에서는코=기타라고 부른다)가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할람(halam)
코라(kora)
아프리카에 밴조란 이름을 가진 악기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명칭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는 분명치않다.
서구적 해석으로는 곧잘 거론되는 것은 그리스어의 판도라(padora)에서
전화되어 널리 같은 계통의 발현악기를 지칭하여
사용되는 반도라(레)(bandora,bandore)란 말이
흑인 발음으로 banjoe로 변화되었다는 설이다.
이 점이 역사적으로 보아도
가장 관련이 깊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평평한 몸통을 가진 소형의 스페인 발현악기 반두리아(banduria)이다.
그러나 서구 문화와의 접촉 이전부터 서아프리카 일대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던 아랍,이슬람계의 악기에서 보자면,
반데르 또는 벤디르(bandair,bendir)로서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은 탬버린계의 타악기이지 현악기는 아니다.
어쨌든 판도라 자체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지중해 세계 일대에서
지역에 따라 각양 각색의 악기명으로 된 듯하다.
탬버린이나 북에 대를 달고 현을 매면 현악기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그와 같은 현악기가 많이 발견되며 양자의 관련을 나타내고 있다.
서아프리카에 현존하는 밴조에 가장 가까운 발음을 갖는 악기는
세네갈에서 잠비아에 걸쳐서 있는 바니아(bania)인데,
카를 엥겔을 비롯하여 이것을 밴조의 조상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명칭의 규명 이상으로 밴조와 서아프리카의 같은 계열의 악기의
혈통서가 된다고 여겨지는 것이 악기의 재료,구조,
그리고 연주시에 악기를 잡는 법,주법 등이다.
그것들에 관해서 여기에서 세세하게 소개할 여유는 없으므로
Paul Oliver: Savannah Snynopators를
일단 참고서로서 들어둔다.
바니아(bania)
좌우간 전술한 바니아를 비롯하여 밴조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관악기는 굉장히 많은데 부족마다 형태나 명칭이 각각 다르다.
그 중에서도 밴조와 공통점이 많고 노예무역 당시의 상황을 추측할 때
가장 근사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세네갈의 윌로프(Wolof)족의
그리오인 게벨(gewel)이 애용 하는 할람(halam)이다.
배에 가죽을 입힌 동체에 4~5현을 가진 이 악기는
말리의 우표(1973년, 그런데 이 우표에는 기타라고 기록되어 있다.)에서 볼 수 있다.
이것과 같은 계열의 것은 동쪽으로 내륙 지역인
말리에서 니제르, 나이지리아 북부, 차드에서 널리 발견된다.
니제르의 손라이(sonrai)족의 쿤티기(kountigui,1971년)등, 현대적으로는
밴조와 가장 가까운 것 중의 하나이다.
같은 니제르의 시리즈에는 할람과 동형인 제르마(Djerma)족의
몰로(molo)나 하우사(Hauss)족의 구르미(gouroumi),
같은 것으로 대형의 가라야(garaya)가 포함되어 있으며,
중앙 아프리카의 민속악기 시리즈(1970년)에도 가라야가 보인다.
그리고 차드(1965년)의 것도 기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 지명은 지겐디 알가라 djiguendi algara 이다.
그런데 킨테가(家)의 발상지로 간주되는 모리타니아에도
할람과 동형의 티디니트(tidinit,1965년)가 있고, 기니아(1962년),이프니(1953년)에서도 보여진다.
이상의 지명으로도 알 수 있듯이 서아프리카의 기타 류트계의 악기의 분포는
거의 이슬람권과 합치하고 있다.
그리고 피트 시거도 How to play the 5-string Banjo 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들이 북아프리카로부터의 이슬람 세력의 침투에 수반하여 반입되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덧붙여서 말한다면, 북아프리카에서 이런 종류의 악기는
군브리(gunbri)또는 그 축소형인 구니브리(gunibri)
라고 불리워지는 2~4현 악기이다.
여기서 아메리카 쪽으로 눈을 돌려 보자.
예의 그로브 『음악사전』에 그와 관련된 자료가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것에 의하면, 밴조란 명칭은 나오지 않지만 미국에서
그 원형이라고 생각되는 악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한스 슬론(Sir. Hans Sloane)이 1968년에 썼던
『서 아메리카 제도 여행기』 A Voyage to the Islands Madere,Barbados,Jameica』
의 자메이카 항에 등장한다.
이 섬에서 흑인 악사들이 노래나 춤을 반주에 사용하는 악기는
'일종의 류트로, 작은 바가지에 대를 달고 말의 갈기나 덩쿨 식물의
껍질을 벗긴 줄기를 현으로 사용한 것'인데,
공명통으로는 속이 빈 통나무가 사용되고
그것을 양피지나 다른 짐승의 가죽으로 두른 것이다.
이미 여러 곳에서 이야기했듯이 아프리카 악기의 공명통에
바가지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
밴조에도초기에는 바가지를 공명통으로 사용했다.
밴조란 명칭이 등장한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토마스 제퍼슨의 유명한 『버지니아 각서』(Notes on Virginia)의
질문 14번째 항이다. 거기에서 그는
" 음악에 있어서는 백인보다도 흑인이 폭넓고 풍부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절(節)이나
박자에 대한 정확한 귀를 가지고 있다."
라는 객관적인 평가를 한 부분의 주(註)에서
"그들에게 특징적인 악기는 밴자(banjar)인데, 이것은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반입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타의 원형이며,
그 현은 기타의 저음 4개와 같은 조이다"라고 씌어 있다.
밴조가 기타의 원형이라는 제퍼슨의 해석이지만,
좌우간 당시의 버지니아의 흑인 노예들 사이에서 4현의 밴조가
극히 파퓰러한 악기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같은 무렵, 영국의 시인 제임스 그랜저(James Grainger)가
1763년 썻던 서인도 제도에서의 시의 일절에는 밴쇼(banshaw)가
춤의 반주에 사용되고 있는 정경이 묘사되고 있다.
어쨌든 18세기 후반에는 밴조의 원형이 아프리카에서의 여타 악기의 제작방법과
마찬가지로 그 지역에서 얻어지는 재료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서인도 제도로부터
미국 대륙에 걸친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보급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슬론이 묘사했던 것 같은 아프리카 스타일의 밴조는
자메이카에서도 일찍부터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데,
1920년경에는 아직까지도 그러한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에서부터도 알 수 있듯이,
19세기에 들어서서 이 악기가 더욱 대중적인 것이 됨에 따라서,
대폭으로 변형되고 발전되었다.
3~4현이었던 것이 1830~40년경에는 제 5현이 추가되고 플랫도 붙여졌으며,
공명통은 바가지 같은 것에서 둥근 틀로 바뀌어서,
바로 미국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자적인 스타일이 탄생된다.
현대적 밴조(banjo)
"토요일 밤에 우리들은 집을 살짝 빠져나와 숲으로 갔다.
주인의 집에서 5마일쯤 떨어진 곳에 낡은 소옥이 하나 있었다.
우리들은 거기에서 마음껏 대소동을 일으켰다.....
아가씨들은 모두 다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있었다.
그 때의 악기들을 살펴보면 바이올린이 둘,탬버린이 둘,
거기에다 밴조 둘과 뼈로 만든 캐스터네츠가 둘이었다....(줄리어스 레스터, 『노예란』에서).
이렇게 흑인들 사이에서 피들(바이올린)과 함께
널리 사랑을 받았던 밴조가 미국의 민속악기로서 지위를 확립했던 것은
1940년대부터 60여 년이 지나서 미국 전토를 석권했던
남성만으로 조직된 민스트럴 쇼에 의해서였다.
백인까지 얼굴을 검게 칠하고 멤버로 참여하거나 밴드를 편성하기도 했던
이 쇼는 한편으로는 오직 이 민스트럴을 위하여 작곡했던
포스터의 흑인풍 가곡을 연주함과 아울러 , 쇼 극단이 바다를 건너
영국을 비롯해서 유럽 전역에까지 보급했던 것이다.
19세기 말에 민스트럴이 쇠퇴한 후로는 새롭게 등장한
재즈 및 컨트리 음악의 유행과 더불어 더 널리 보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의 밴조 형태나 연주법, 그 형태등에 관해서는 많은 문헌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본고장인 미국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밴조 우표는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것으로서 서인도 제도의 영국령 작은 섬인
세인트 키츠 네비츠 안길라(1970년)와 벨리즈(1975년)에서 그럴 듯한 주자의 모습이 보인다.